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푸아 운동 (문단 편집) == 주요 관련자 == * 비흐토리 코솔라 (Vihtori Kosola) 초기 지도자. 별명은 "[[베니토 무솔리니|코솔리니]]".1920년대에 [[구사대]] 용역회사인 비엔티라우하를 설립했다. 1929년 라푸아 운동의 초대 지도자로 추대되었으나, 1932년 맨챌래 반란 때 수감되었다. 후신인 IKL에서도 총재직에 이름을 올렸으나, 출감 이후 스트레스로 폭음을 하여 1936년 당에서 제명당하고 같은 해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. 장남 닐로는 국민연합당에 들어가서 1958년 농무장관을 지냈다. 차남 펜티는 [[겨울전쟁]]에서 전투기 파일럿으로 복무 중 격추되어 전사했다. * 빌호 아날라 (Vilho Annala) 후기 지도자. 통계청 공무원 출신. 코솔라가 제명된 뒤 1944년 IKL이 해산당할 때까지 총재를 지냈다. 상술했다시피 거국내각에 입각한 적도 있으나 결국 팽당했다. 정치활동이 금지된 이후 [[헬싱키 대학교]]에서 정치경제학 교수를 했다. * 헤르만 구메루스 (Herman Gummerus) 언어학자. 스웨덴계인데 스웨덴어를 증오하는 핀란드 파시즘에 가담했다. 정통보수주의자로서 국민연합당과의 선거단일화를 추진했다. 그리고 그 결과는 상술했다시피(...). 당내 혐스감정을 못 이기고 결국 1934년 탈당. * 쿠르트 발레니우스 (Kurt Martti Wallenius) 군인. 최종계급 소장. 1925년에서 1930년까지 핀란드군 총참모장이었으나 스톨베리 대통령 납치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아 불명예 전역했다. 라푸아 운동 몰락의 시작이 된 맨챌래 반란의 지도자로 추대되었다. [[겨울전쟁]]이 터지자 복직, 라피 집단군 사령관으로서 살라와 페차모에서 압도적인 수의 소련군을 격퇴했다. 하지만 1940년 3월 초 남부전선에서 소련군을 막아내지 못했고, 이때 술에 취해있었다는 고발이 들어가 다시 불명예 전역당할 뿐 아니라 아예 군적이 파였다.(...) [[계속전쟁]] 때는 재임용되지 못한다. 그 뒤 퇴물이 되어 회고록이나 쓰다 1984년 사망. * 힐랴 리피넨 (Hilja Riipinen) [[여교사]]. 원래 국민연합당 의회의원이었으나 1933년 탈당하고 IKL에 입당했다. 비타협적인 성격으로 당세 축소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. 당이 망한 뒤 교직으로 돌아갔다. * 브루노 살미알라 (Bruno Salmiala) 법학자. 국민연합당 기관지 편집국 소속이었으나 탈당하고 IKL에 입당했다. 당이 망한 뒤 학계로 돌아가 91세까지 장수했다. 1981년 사망. * 엘리아스 시모요키 (Elias Simojoki) 당내 청년조직인 청흑단을 이끌던 목사. 청흑단이 1936년에 해산되자 1937년에 푸른 셔츠단라는 이름으로 재건했다. 1939년에[[겨울전쟁]]이 터지자 소련의 침략에 맞서 핀란드 육군의 군목으로 종군했다. [[참호]] 사이의 무인지대에 부상당한 말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[[권총]]으로 [[안락사]]를 해주러 갔다가 총에 맞아 전사했다. 향년 40세. * 아르네 소메르살로 (Arne Somersalo) 군인. 독일 [[예나 프리드리히 실러 대학교]][* [[마르틴 루터]]와 [[카를 마르크스]]의 모교]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한 인텔리. 1차대전 때 [[독일 육군]]에 장교임관했고 핀란드 독립 이후 [[핀란드 공군]]사령관을 6년(1920년-1926년) 역임했다. 1930년 라푸아 운동에 가담했다. [[겨울전쟁]]이 터지자 예비역 중령으로서 재소집되어 [[수오무살미]] 전선 참모장으로 복무했다. [[계속전쟁]] 때는 핀란드 북부 [[라플란드]]에 주둔한 독일 [[무장친위대]] 사단과의 연락장교를 맡았다. 1941년 전사. 향년 50세. * 파보 수시타이발 (Paavo Susitaival) 군인. IKL 소속으로 의회의원도 했다. 겨울전쟁이 터지자 [[수오무살미 전투]]에서 분전했다. 매우 유능한 군인이었으나 만네르헤임을 비롯한 고급장령들과 사이가 험악했기에 중령 이상 승진을 못 했다고 한다. 전후에는 작가가 되었다. 14살 때부터 매일 담배를 핀 골초였는데 97세까지 장수했다. * [[마르티 피흐칼라]] (Martti Pihkala) 1920년 결성된 [[비엔티라우하]]의 사장을 지냈다. 라푸아 운동 지도자 코솔라도 원래 비엔티라우하 직원이었다. IKL이 친노동적 움직임[* 파시즘은 반공이면서 동시에 반자본이기에 당연한 것이다.]을 보이자 탈당했고 동시에 코솔라를 자기 회사에서 해고했다. 1940년 국민대통합을 위해 사용자연합이 노총을 교섭대상으로 인정하면서 실업자가 되었다. 전 대통령 [[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]]와 함께 끝까지 독일 편에서 싸워야 한다는 찌라시를 만들어 돌리다가 체포되었으나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다. 동생 [[라우리 피흐칼라]]는 운동선수, 체육학자로 핀란드식 야구인 [[페새팔로]][* 야구와 비슷한데 루가 세 개라서 삼각형이다.]를 고안한 사람이다. 이 인간도 우생학자로, 체육은 본질적으로 전투의 준비이기에 남자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